CHILE. Valparaiso. 1963.
© Sergio Larrain

 

예전부터 갖고싶던 Sergio Larrain의 사진집 Valparaiso를 우연히 들른 카페에 전시되어있는걸 보고 주인에게 부탁해서 구입했다. 화이버베이스 인화지를 묶어서 책 한권을 만든 듯 종이의 재질과 프린트의 상태가 너무 좋았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한권의 사진집으로서 너무나도 아름답다. 예술이란 역시나 내용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중요하다는걸 새삼 다시 실감. 내가 구입한 Thames & Hudson 판본 말고 1991년 발매된 Hazan edition이 더더욱 갖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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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매그넘의 사진가 Sergio Larrain이 어떻게 하면 사진가가 될 수 있냐는 조카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일단 마음에 드는 그리고 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는 좋은 사진기를 하나 구하려무나.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적절한 장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지만 거추장스러운 것 없이 꼭 필요한 기능이면 충분하단다.

사진을 찍을 때면 모험을 즐기듯이 행동하려무나. 닻을 드리운 항해보트처럼 말이다. 발파라이소나 칠로에섬으로 가서 종일 모르는 모든 곳을 구석구석 돌아다녀 보려무나. 이따금 지치면 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고 배가 고프면 바나나나 빵을 사 먹어도 좋단다. 첫차를 타고 어디든 원하는 곳으로 훌쩍 떠나보렴. 새로운 것을 보고, 낯선 이들에게 다가가 보고, 이곳저곳을 끊임없이 돌아다녀 보아라. 그러다 무언갈 찾아보렴. 어느 날인가 이미지가 불현듯 너에게 다가와 너를 강타할 거야.

집으로 돌아와 필름을 현상하고 프린트하고 네가 보고 낚아 올렸던 것들을 다시 유심히 살펴보렴. 사진을 인화해서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으면 좋다. 그리고 그걸 보는 거야. 왔다 갔다 하며 사진을 보고 그걸 어떻게 프레이밍 할지 잘라낼지 고민해보렴. 그럼 구도와 공간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을 거야. 네가 원하는 프레임을 크게 확대 인화하고 벽에 붙여보렴. 그걸 보면서 너는 무언갈 배울 수 있을 거야. 여러 사진 중에 가장 좋은 사진을 가장 높은 곳에 붙여놓으렴. 나머지 것들은 사실 없어도 된단다. 사진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면 모조리 다 버려야 해. 우리는 자꾸 불필요한 것들을 간직하려는 쓸데없는 마음이 있으니 가장 좋은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려야 한단다.

그리고 사진을 잊고 하던 일을 계속하렴. 책, 잡지 무엇이건 손에 잡히는 것에서 좋은 걸 찾아내는 연습을 해보아라. 마찬가지로 가장 좋은 것을 남기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단다. 가능하면 그것들 역시 벽에 테이프로 붙여놓으면 좋단다. 자르기 힘든 책이라면 그 가장 좋은 페이지를 펼쳐놓고 그것을 그대로 두면 된다. 몇 주건 몇 달이건 말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비밀은 결국 드러날 거야. 가장 좋은 것과 그 정수가 마침내 모두 모습을 드러낼 거란다.

사진을 찍으려고 너무 서두르지 말고 유유히 삶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단다. 사진을 찍으려고 너무 어깨에 힘을 주고 사냥하듯 돌아다니다간 네 안에 있는 시적인 정신이 죽어버릴지도 모른단다. 그리고 삶은 스트레스로 가득 찰 거야. 그건 사랑이나 우정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단다. 그게 어렵다면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단다. 푸에르토 아귀레 섬으로 가거라. 베이커로 가고 다시 아이센에서 폭풍우를 만나보렴. 발파라이소는 언제나 아름답단다. 마법에 걸려 길을 잃고 헤매거나, 슬로프와 거리를 오르내리며 길을 잃고, 침낭 속에서 잠들고, 물속에서 수영하듯이 현실에 발을 담가보렴. 뻔한 것들에 눈을 팔면 안 된단다.

발길이 이끄는 데로 천천히 보는 것을 즐기고 허밍을 하며 걸어보렴. 더욱 유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할 수 있을 거란다. 구도와 프레이밍을 생각하고 카메라를 잘 이용해서 그물을 가득 채운 후 집에 와서 어떤 고기가 잡혔는지 살펴보렴. 초점, 조리개, 클로즈업, 채도, 셔터속도에 대해서도 공부를 하면 좋단다. 카메라의 기능에 대해서 충분히 숙지하렴. 네가 찾아낸 그 모든 시적인 것들 좋은 것들을 잘 모아두렴. 다른 사람의 것이라도 말이다. 폴더 속 작은 박물관처럼 가장 좋은 것들을 모아나가야 한다.

네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사진을 찍어야 한다. 너의 취향 이외에는 중요하지 않단다. 너는 삶 그 자체이고 그것은 바로 선택이란다. 너 자신이 유일한 기준이란다. 계속 공부를 하려무나. 좋은 사진을 찍게 되면 그것을 크게 확대하고 작은 전시회를 하거나 사진첩을 만들어서 그것을 잘 묶어두렴. 너의 사진을 보여주게 되면 비로소 그것이 무엇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거란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 놓여있을 때 비로소 드러날 거야. 전시회를 한다는 것은 네가 만든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과 같단다. 그러니 그 안에 진지함과 기쁨을 넣는 것이 좋을 거란다. 좀 그렇지만 사실 이게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다.

진지하게 사진을 하기에 충분한 때야. 그러니 어디서든 나무 아래 앉거나 방황을 해보렴. 이것은 네 안에 있는 우주를 헤매는 것과 비슷하단다. 그리고 너 스스로 그 안에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을 거야. 평범한 세상의 베일을 너의 눈으로 벗겨내야 한단다. 사진가로서 네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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