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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진이 선생님이 원한 유일한 일이었나요?

무엇보다 사진 찍는 것이 좋아서 사진을 찍는다는 생각이 좋습니다. 하지만 내가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작업으로 소통할 수 없다면, 나는 광란에 빠진 은둔자가 될 것이며 그만둘 게 분명합니다. 나는 사진 작업을 사랑합니다. 무언가를 보존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절대 풀어낼 수 없는 무한한 수수께끼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사진은 답이 없는 수수께끼 같아요. 사물들을 모아놓고 그것들이 무엇처럼 보이는지 바라보는 거지요. 또 세상을 보면서, 그 안의 형태, 모양, 톤, 빛, 감정, 느낌과 표현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게임을 바라보면서, 끝없이 발견하는 매혹이지요.

내게 자아가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몇 년 전 전시회 오프닝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와서 갤러리에 발 디딜 틈조차 없던 적이 있었는데 정말 뿌듯 했거든요.

그렇다면 나는 윌리엄 크리스텐베리처럼 사라져가는 대상의 보존을 위해서 사진을 찍는가? 아닙니다. 혹은 워커 에반스처럼? 혹은 파괴되고 있는 파리의 풍경을 기록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는다고 진술한 앗제처럼? 난 그런 방식으로 특정한 주제에 매달리지 않습니다. 나는 멕시코를 사랑합니다. 그곳엔 초현실적인 분위기가 있지요. 내가 좋아하는 사진들을 찍게 해줘요. 나와 잘 맞는 지역입니다.

내 안에 어느 정도 이미 형성된 사진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미지, 아이디어, 생각 혹은 다른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떤 것이지요. 이 안에 세상이 있고 저 바깥에 또 세상이 있습니다. 나는 걸어 다니면서 무언가 내 안의 사진과 교감하는 것을 바라보고 이 작은 검은 박스로 담아냅니다. 예술은 교감 안에 존재합니다. 로버트 프랭크가 말했듯이, 내 안을 들여다보기 위해 바깥을 바라보는 것이지요.

사진을 누군가에게 보일 때, 아마 당신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텐데, 서로 소통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 작업의 주제가 그렇게 흥미로운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건 뉴욕 주의 워릭에 있는 나무처럼 생겼네” 와 같은 종류의 소통이 아닌 거지요. 내 작업에서 소통일나 주제 그 자체보다는 심리적, 정신적인 공명에 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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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의 가치를 따지기 전에 그저 시선을 끄는 것을 향해 셔터를 누릅니다. 그 다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결정하는 과정이 편집과 인화입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을 때는 최대한 백치 상태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와, 이게 뭐지? 멋지다. 저 나무덤불에 떨어진 빛을 봐! 저 사람의 손 모양 좀 봐!” 이런 식입니다. 그저 바라보고 기록하는 것입니다. 인화와 편집을 할 때는 찍은 것들이 진정으로 내가 말하고 싶은 건지 고민합니다. 인화를 할 지, 그냥 필름으로 남겨둘지도 결정합니다. 그래서 만약 날 모르는 누군가가 내 필름만을 본다면 내 작업에 대해선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필름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순간의 기록입니다. 필름은 명백히 내가 보는 것에 대한 나만의 느낌이 담겨 있습니다. 바라보는 동안의 내 마음이 배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필름 안에 존재합니다. 말하자면 필름은 경험에 대한 모메로 칩입니다. 루페를 통해 아주 내밀한 심정으로 필름을 들여다봅니다. 나 말고는 내 필름을 보는 사람이 없지요. 하나씩 그저 바라봅니다. 그리고 “여기 내가 하고 싶은 얘기가 있구나” 라고 할만한 필름을 뽑아냅니다. 그런 다음 인화를 하지요. 인화는 기술을 요하는 작업입니다. 에드워드 웨스턴은 인화를 하면서 슬픔을 느꼈지요. 왜냐하면 필름 상태가 필요이상 훌륭했기 때문입니다. 인화를 하는 동안 필름에 담긴 모든 정보들은 사진가의 선택 속에서 축소됩니다. 암부, 명부, 콘트라스트, 강조하고자 하는 영역들을 정하면서 당신이 하고 싶은 얘기를 결정하게 됩니다. 인화는 기억을 바깥으로 공표하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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