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ger

예전에 20대 때 학교를 휴학하고 부산에 있던 한 시네마테크에서 일한적이 있었다. 당시만해도 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는데 아예 진로를 수정해서 그 쪽으로 나가볼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었다. 물론 영화제작 보다는 아마추어 수준에서 시네마테크의 운영이나 영화제 프로그래밍 따위의 일을 하는 것이 다였지만, 그럼에도 일은 재밌기만 했고 위치가 위치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평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한 영화를 사랑하는 세 가지 방법을 실천하며 지낸 셈이었다. 이런저런 고생도 많았지만 생각해보면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나게 보낸 시기 중 하나였다.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당시 좀 놀랐던 것은 바로 사람들이 다들 참 많이 다르다는것을 새삼 느꼈던 것이다. 서로가 다 영화를 좋아하지만 취향도 제각각 다르고 보는 시각도 제각각 다 달랐다. 그리고 똑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관심있게 보는 것도 느끼는 것도 해석하는 것도 모두 다 달랐다. 하나의 영화를 놓고서도 서로 다른 분야의 사람들이 영화 그 자체 보다는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분야에 입각한 이야기를 참 많이했다. 그러니깐 영화는 하나의 그저 하나의 스크린이고 그곳에 투영되는 것은 전혀 다른 장르의 고민들이었다. 그 중 상당수는 문학비평이었다. 영상에 대한 고민 보다는 그저 스토리가 어떤지 얼마나 짜임새가 있고 좋은지 따위의 내러티브 비평 또는 문학 비평만을 하는 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러니깐 주말드라마 줄거리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수준과 별다르지 않았다. 왜 작가가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문학이 아닌 사진이 아닌 미술이 아닌 영화로 하는지에 대한 매체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또 그들 대부분은 기본적인 영화문법, 그러니깐 미쟝센이나 카메라워크, 편집은 보지 못하였다. 그러다보니 카메라를 통해서 뻔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드러나더라도 그것이 내러티브로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들을 대부분 ‘예술영화’ 라는 딱지를 붙이며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이야기하였고 영화의 구조가 내러티브를 통해 드러나는 그러면서도 추리소설처럼 잘짜여진 영화를 대부분 선호하였다.

요즈음에는 사진에도 비슷한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것을 느낀다. 디지털 카메라와 핸드폰 카메라의 보급이후. 사진분야에 있어서는 타 분야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누구나 사진을 찍을 수 있고 그것을 쉽게 남에게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조금 더 진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정말 많은 자신의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사진에 투자한다. 비록 자신의 직업은 아니지만 삶의 상당한 부분을 사진에 쏟아붇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러한 사진들이 말 그대로 ‘예쁜’ ‘멋진’ 사진을 생산해내는 것에 그치곤 한다는 것을 자주 목도한다. 그 사람이 1년 동안 찍어놓은 사진들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대부분 주제도 일정치않고 포맷도 일정치 않고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도 없고 그냥 ‘잘찍은’ 사진들의 모음인 경우가 허다하다. 물론 그 중에는 특정 주제에 천착하여 뚝심있게 나아간 사진들도 많이 보인다. 마치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처럼 늘 어떤 주제를 루틴하게 담아나가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냥 어떤 주제의 반복인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관성적인 사진. 자신이 관심있는 곳을 끊임없이 찾아가서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고 그 사진을 모아놓으면 그저 그 세월이 작품의 수준이 되는 것일까? 비록 아마추어인 내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마추어와 프로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물론 이 아마추어와 프로라는 것을 단순히 대학 전공을 사진을 했느냐 또는 어느정도 명성이 있는 전시장에서 전시회를 했느냐 따위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취미사진을 오랜기간 하시는 분들 중에서 정말 어마어마한 깊이를 보이시는 분들도 얼마든지 많다. 그러다보니 결국 핵심은 어떤 형식적 차이 보다는 사진가 본인이 사진의 본질에 대하여 그리고 사진의 문법에 대하여 자기 나름의 고민을 하고 그 끝에 자신만의 해답을 얻고 그래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사진이라는 언어를 통해 어떻게 잘 전달하는가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어제는 밤에 쇼파에 누워 구입해다놓고 미쳐 읽지 못했던 존 버거의 <사진의 이해>라는 책을 마져 읽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는 이미 사진이라는 형태와 언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문득문득 했던 상념들 이상의 것들에 대하여 이미 많은 정리를 해놓았다. 책을 읽으며 내내 그렇지 그렇지.. 라고 혼잣말을 되네이며 공감을 하며 읽었던 것 같다. 사진은 결국 말이 아닌 이미지 그자체로 불가해한 세상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어느 자리에서 어떠한 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보여주느냐의 문제는 결국 사진가만의 개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 좋은 사진이란게 있다면 그건 아마도 세상에 어떤 인간은 가치있고 어떤 인간은 가치가 없다고 하는 것 만큼이나 폭력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모든 사진은 저마다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는 사진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진이 있는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깐 자신의 사진이 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이 아마도 그 사진가의 수준을 보여주는게 아닐까 싶다.

 

Berger, J., 2013. Understanding a photograph. Penguin UK.